선의, 신뢰, 그리고 행복의 격차: 세계 행복보고서에서 본 한국 사회의 과제
글로벌 트렌드와 한국 사회의 단면
2025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5)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중 '선의와 신뢰', '삶의 질 불평등', '긍정적 인식의 보호 효과'에 대한 4개의 도표는 단순한 통계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본질과 앞으로의 과제를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과 연결해 행복 격차를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1. 지갑 반환 기대가 가장 큰 행복 요인
'그림 2.4'는 사람들의 삶의 평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이 중 '지갑을 잃었을 때 누군가 돌려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신뢰'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려 +0.769로, 실업 상태가 주는 부정적 영향(-0.400)을 훨씬 상회합니다. 즉, 물질적 조건보다 사회적 신뢰가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한국 사회는 최근 몇 년간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오는 나라'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사회와 타인에 대한 신뢰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많습니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사회 신뢰도는 OECD 평균인 40%에 한참 못 미치는 28.6%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20대의 경우 사회 신뢰도가 20%대 초반에 그쳤으며,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 2023).
2. 선행은 위기 속에 더욱 강화된다
'그림 2.2'는 지난 20년간의 글로벌 선행 참여 추이를 보여줍니다. 코로나19 이후 선행(Prosociality)과 타인 돕기(Helping strangers), 기부(Donations) 활동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이는 위기 속에서 사회적 연대가 강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경우, 팬데믹 초기 마스크 나눔이나 '착한 임대인 운동' 같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2020년 코로나 확산 초기 두 달간, 서울시 마스크 기부 캠페인에 시민 1만여 명이 참여해 30만 장 이상의 마스크가 취약계층에 전달되었습니다. 또한 국세청에 따르면 2020년 개인 기부금 공제 신청 건수는 전년 대비 12% 증가했으며, 청년층의 기부율이 처음으로 30%를 넘겼습니다 (서울특별시, 2020; 국세청, 2021).
3. 삶의 질 불평등, 국가 내에서 심화 중
'그림 2.5'는 삶의 질 불평등이 국가 내부에서는 커지고 있지만, 국가 간 불평등은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2005년 이후 국가 내부의 불평등 지수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전체 불평등 중 국가 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뚜렷한 내부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나는 행복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수도권이 67%인 반면 비수도권은 54%에 그쳤으며, 월소득 500만 원 이상 가구의 행복도는 72%인 반면 200만 원 미만 가구는 41%로 격차가 뚜렷했습니다. 또한 1인 가구와 노인층에서 행복 격차는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고령층 중 혼자 거주하는 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평균보다 25% 낮았습니다 (통계청, 2023).
4. 긍정적 인식은 삶을 지키는 방패
'그림 2.6'은 삶의 만족도를 낮추는 어려운 상황(실업, 건강 악화, 차별 등)에서도 타인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높은 만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건강이 나쁜 경우, 신뢰를 갖지 않은 사람은 -3.066까지 삶의 만족도가 떨어졌지만, 타인을 공정하고 친절하다고 여긴 사람은 -1.361로 절반 이하의 감소를 보였습니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 태도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삶을 지키는 보호 요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높은 경쟁 구조와 낮은 사회적 신뢰 수준으로 인해 이러한 보호 효과가 충분히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과 청년층의 70% 이상이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3). 따라서 일상 속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절실합니다.
행복은 개인의 몫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
이 4개의 도표는 단편적 수치를 넘어서, 신뢰와 연대가 인간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마주한 행복 격차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 붕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신뢰를 회복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책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선행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잃어버린 지갑이 돌아오며, 아플 때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행복한 나라'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국세청. (2021). 2021 세금통계연보. https://www.nts.go.kr
서울특별시. (2020). 마스크 기부 캠페인 관련 보도자료.
세계행복보고서. (2025). World Happiness Report 2025. https://worldhappiness.report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3). 2023 청년의식조사. https://www.kihasa.re.kr
한국행정연구원. (2023). 2023 사회통합 실태조사. https://www.kipa.re.kr
통계청. (2023). 2023년 사회조사. https://kostat.go.kr